노동, 자본주의 피라미드를 비틀다

 청소년 노동권, 

총체적 권리로 접근해야 / 이수정

청소년과 노동, 그리고 인권이 만나는 현장에는 늘 ‘청소년이 무슨 노동이냐’는 질문이 있다. 마치 편의점, 식당, 스터디 카페, 제조업체 포장 라인, 뮤지컬 극장 무대 위에 있는 청소년 노동자가 안 보이는 것처럼 묻는다. 우리 곁에 있는 청소년 노동자는 플랫폼 업체에서 일감을 받아 영상 편집을 하고, 따뜻한 음식을 배달해 준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학습하느라 중노동에 시달리고, 집안일을 하느라,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다. 임금노동이든 비임금 노동이든 청소년의 삶은 결코 노동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청소년과 노동, 인권 사이 거리는 멀기만 하다.

남자만큼, 아니 남자보다 더! 

/ 김엘림

여자의용군 모집 경쟁률이 그리도 높았다는데, 육군은 과연 어떤 여성들을 뽑았던 걸까요? 모집과 선발, 훈련, 배치 및 그 이후의 복무 전반에 이르기까지 여자의용군은 남성들만큼, 아니 남성들보다 더 우수하고 더 탁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남성들만의 공간인 군에 여성이 들어오려면, 일반 남성 사병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차별화’가 가능해야 했던 것이죠. 가장 손쉽고 명확한 차별화의 지점은 바로 ‘학력’이었습니다. 

정치 산업 내 의사결정권자가 

다양해지려면/ 박혜민

2020년 가을, 회사를 관두고 쉬는 중에 바쁠 때는 잘 들리지 않던 정치 소식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평화로운 일상에 방해가 되는 걸 넘어서 우울감을 줬다. 실망스러운 사건이나 상황도 마음을 갉아 먹었지만 나를 애닳게 한 건 나와 내 친구들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 정치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거였다. 선거 때면 매번 되풀이하던 왜 자꾸 비슷한 사람들이 또 나오는 거냐는 푸념에 백수의 한가함이 더해져 어느새 진지한 질문이 되었다. 내 또래는 몇 명이나 있는지 궁금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트에서 여러 통계 자료를 뒤적이다가 생각보다 너무 낮은 비율에 놀랐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만 39세 이하 정치인은 전체의 6%, 후보자 비율은 전체의 7% 였다.

모두의 힘을 아는 사람

/ 가연

주일 미군 기지의 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 곳, 오키나와.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이는 미군기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오키나와 반환 50주년이었던 지난 2022년 5월,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지역으로 이전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여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출신의 진시로 모토야마(Jinshiro Motoyama, 이후 진시로)님의 이야기입니다.

 향기 있는 시간을 위하여 

/ 오은영

지난 2월 하순 열흘이 채 안 되는 일정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정이 짧아서였는지 여행 내내 시차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고 지금까지도 뒤죽박죽이 된 수면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시간 감각의 손상 같은 것(아마도 시차 같은 것이 대표적이겠지만)을 경험할 때면 종종 현실과 괴리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멀어진 그 현실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익숙한 공간과 사물에 기댈 필요를 절감하곤 합니다. 늘 만나던 사람들, 머물던 장소, 사용하던 물건들. 그런 존재들을 느낌으로써 서서히 시간과 나를 밀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빛의 속도로 화장실을 갈 수 없다면 / 덴마

최소한의 기본권인 화장실을 사용할 권리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화장실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져버린다. 이처럼 화장실은 가장 사적이지만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며, 화장실이 제시하는 ‘정상’의 기준은 일상적으로 사람들을 규율한다.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가 외면되는 이 사회의 단면이 공간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곳이 바로 화장실이다. 픽토그램부터 여성=치마, 남성=바지라는 표식으로 우리의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화장실이 그저 화장실일 수는 없을까?

잠깐, 오빠의 승리를 비는 거 말고요 / 김엘림

2022년 1월, 웬 편지 하나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군인 조롱 위문편지’ 논란이었죠. 내용도 그렇지만 그 이후의 신상털이, 사이버불링까지 관련 뉴스가 한동안 이어졌던 것을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처음 문제의 편지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느낌은, 뭐랄까요... 절반의 경악과 절반의 한탄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이런 거죠. “아직도 이런 걸 쓰고 있다고?”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게 

/ 가연

안보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접근이 제한된 정보와 이를 빌미로 휘두르는 두려움의 정치는 국제 사회의 위계가 더해진 미군기지에서 극대화됩니다. 북한은 물론 일본과 중국 등 동북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군사적인 긴장감을 한껏 높이고 있는 지금, 미군은 이미 주둔하고 있는 기지들을 재배치하는 등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이미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을 사전에 조율하지도, 널리 알리지도 않습니다. 어느 날 ‘그렇게 결정되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입니다.

더슬래시는, 

평화와 커먼즈의 관점에서 현실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언론을 표방합니다. 

현실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수많은 만남 속에서 변화하고 또 변화합니다. 


그렇기에 더슬래시는, 

그 변화의 방향이 ‘모두의 것으로서의 평화’를 향하도록 

고유한 속도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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