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슬래시 골라 읽기

감금과 추방의 시공간,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삶들 / 아정

'듣기'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라는 것을 보호소 ‘안’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매번 절감한다. ‘들리는' 것과 '듣는' 것은 그래서 다르다. 한국은 '난민'이 '자격'이 되는 사회다. 자격을 얻지 못한 불안한 삶들, 여전히 난민조차 되지 못한, '대기 중'인 삶들이 곳곳에 있다. 이제 국경은 국가 안에서도 존재한다. 아시아, 아프리카에 국한해서 그렇다.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이 대다수인 구금 외국인들은 '인신의 자유'뿐 아니라 '미래'를 강탈당한 채 유예된 시간 속에 '있다’. 이들에게 구금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주 구금은 정부 당국의 통치성에만 기대어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구금’과 ‘추방’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외국인보호소는 비국민/비시민을 밀어내며(그러나 필요로 하며) 만들어지는 국민/시민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전략적인 무관심'으로 지탱된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성소수자 시민에게 시민의 권리를 / 지오

성소수자 인권의 문제는 차별금지법과 함께 가시화되어 왔다. 차별이 극심한 곳일수록 차별금지법이 더욱 절실하기 마련이다.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은 아니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와 함께 논의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라마다 차별의 대상이나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10여 년 전부터 ‘재일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혐오 표현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은 재일한국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대응하여 2016년 ‘혐오표현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벌칙조항이 없는 한계가 있었지만 혐오 표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고 국가가 차별과 혐오 해소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극심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정책을 마련한 것이다.

어려움을 증명하여 사람의 자격을 얻으라는 괴상한 난민제도 

/ 에밀리 왕

“국민이 먼저다”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의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예멘 난민의 안위보다는 국민의 안위가 먼저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예멘 난민”이 아니었음에도 그 말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나를 공격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 말들은 나를 공격하는 말들이기도 했고, 일상속에 만연한 차별이 드러나는 말들이었다. 누구의 안전이 다른 누구의 안전보다 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은 이주자인 나의 몸에 분열을 일으켰다. 예멘 난민 친구보다 한국 국민의 안전이 중요한가? 그러면 나의 안전은 어디에 위치할 수 있지? 이것은 이미 존재하는 나의 몸 그 자체에 분단을 초래했다. 누구의 안전이 다른 사람의 안전보다 먼저 될 수 있는 일인가? 이 문장은 그 자체로 내 몸에 난(亂)을 일으켰다.

더슬래시는, 

평화와 커먼즈의 관점에서 현실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언론을 표방합니다. 

현실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수많은 만남 속에서 변화하고 또 변화합니다. 


그렇기에 더슬래시는, 

그 변화의 방향이 ‘모두의 것으로서의 평화’를 향하도록 

고유한 속도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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